[한국 공예 속 화각 공예 -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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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

[한국 공예 속 화각 공예 - 두 번째 이야기]

by 지뇨떄라삐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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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원삼국 시대부터의 전통을 지닌 우리나라의 복채 기법은 화각 공예에 적용되어 본격적인 공예 기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화각 공예의 화각이란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827년 편찬된 서유구(1764-1845)의 와 이 규경(17880)의 부록에 골각유를 다루는 기법에 대해 기록되어 있어 당시 골이나 각을 주재료로 한 공예품이 제작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규경의 것에는 제언데 모법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것은 가짜 대모를 만드는 법에 관한 설명인데 대모의 희귀성으로 말미암아 화각을 대체 사용했으며 이것이 화각 공예의 발생과 관련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화각 공예 작품은 조선시대 말기나 근대기에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며 18세기 이전으로 소급되는 예는 전무하다. 이것은 재질 상의 취약점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소뿔이 군수품인 각궁의 재료였던 까닭에 국가에서 그 수급을 통제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조선시대 화각 공예품의 본격적인 제조는 각궁의 수요가 줄어든 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부터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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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각 공예품의 종류는 수장용 가구, 침선 용구 문장 용구 기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규방 용품인 수장용 가구와 침선용 구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수장용 가구로는 함, 상자를 비롯하여 장, 농, 빗접, 좌경, 합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소형의 함과 상자류이다. 화각장과 농은 화각 장식을 한 유물 중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기구이나 일반적인 장들보다는 작은 편이다. 궁중용 화각 공예품의 특징을 살펴보면 크기가 일반 화각 공예품보다 크며, 색채는 오색을 기본으로 하나 함의 경우, 분홍색과 갈색 등이 많이 사용되어 매우 화려하다. 반면 장은 명도나 채도가 낮은 색채를 사용하여 온화한 느낌을 준다. 무늬 시문 기법에서는 흑색으로 윤곽선을 긋고 그 안에 채색하는 전통적인 기법과 이를 따르지 않는 기법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인다.

 중심 무늬는 대부분 용이나 봉황, 학과 같은 길상 동물이며, 대개 비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무늬의 배치도 몸체 하단에는 주로 연지 수금 무늬가, 옆면과 앞면의 모서리에는 학과 소나무 무늬 등의 꽃과 새 무늬가 위치하는 등 규칙성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용 화각 공예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로는 이국적인 식물 표현이나 다양한 형태의 모란, 불 보살상 등의 무늬를 주로 다룬 장방형 계열이다. 그리고 둘째는 뚜껑 무죽인 부분에 대모를 붙이지 않고 작은 점무늬를 시문 한 후 천판을 넷으로 분할하여 새와 꽃무늬를 대각선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하는 정방형 계열이다. 19세기 화각 공예의 무늬를 살펴보면, 일반 공예품에 가장 흔하게 쓰인 십장생무늬가 이용되는데, 용, 호랑이, 사슴, 봉황, 사군자, 꽃과 새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무늬는 대개 재치 있고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두세 개의 소재를 조합하여 한 폭의 그림처럼 구성하였고, 한 개의 기물에 여러 장면의 무늬가 들어가며 함이나 장롱과 같이 면을 분할한 경우에는 동일한 무늬를 반복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화각은 제작 공정의 특성상 각지에 그림을 그린 다음 크기에 맞게 오려 붙이기 때문에 가장자리 부분은 잘려 나가게 되어 연속되는 무늬의 경우에도 연결부위의 무늬를 그대로 살린 경우는 없다. 색채는 오방색을 기본으로 하여 흰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자색 등을 많이 사용하며 때로는 흑색과 금 은박을 쓰기도 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우골계선이 강조되어 고부조로 돌출되는 양상을 보이며 대모 장식의 사용이 증가한다. 특히 면 분할 방식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기존의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의 구획 방식에서 벗어나 원형이나 마름모꼴로 재구획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사용되는 색채의 수도 증가하고 선명해진다. 화각 공예는 1910년대 말까지 서울 교외 한강 변인 양화진(지금의 마포구 서교동)을 중심으로 성행하였으나 1920년대 이후로 급속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1930년대 중반에 이 지역에서의 작업은 완전히 중단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일제 주도 아래 1922년 이씨 왕가 미술품제작소를 통하여 새로운 화공 재료 등의 도입이 시도되는 등 변화로 말미암아 전통 기법의 저해 요소가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이후 근대 전통 화각 공예의 명맥은 실질적으로 음 일천 선생에 의하여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도 일본인들의 미감에 맞게 변형되고 왜곡된 양상이 보인다. 화각 공예품의 특징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각형 각지의 연속 부착으로 인한 반복의 질서 미와 소뼈를 계선으로 사용한 구획, 그리고 음양오행 사상을 기반으로 한 오방색의 사용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우리나라 화각 공예품만이 지니는 독특한 의장이며, 독자성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근대 시기 일제 주도 아래의 제작 환경 때문에 전통 기법의 발전이 저해되었다 하더라도 화각 공예는 전통 요소를 공예품에 적용하여 독창성을 끌어낸 결과물이다. 아울러 화각 공예품은 조선시대 후기 규방용 품의 화려한 일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존에 전해지는 유품들의 재현이 이루어지면서 전통 화각공예의 부흥을 꾀하는 움직임이 있으나 역시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이에 대한 연구도 미진하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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