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예 속 동물 무늬 - 두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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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

[한국 공예 속 동물 무늬 - 두 번째 이야기 ]

by 지뇨떄라삐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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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은 자연계에 실재하는 새인데도 옛사람들은 매우 신비스럽고 영적인 존재로 인식하였다. 옛 문헌에 '학은 양의 새이다. 16년에 소변 하고 60년에 대변한다. 2년에 잔털이 떨어져 검은 점으로 변하고 3년에 머리가 붉게 변한다. 7년에 은하수를 치고 날며 또 7년에 춤을 배우고, 다시 7년에 절도를 터득한다. 밤낮으로 12번을 60년에 큰 털이 빠지고 못 털이 무성해진다. 깃털은 눈같이 희며 진흙탕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160년에 암수가 서로 만나 눈을 마주쳐 주시하면 잉태한다. 1600년 동안 물을 마시지만 먹이는 먹지 아니한다. 물을 먹기 때문에 부리가 길며 앞은 훤칠하고 뒤는 짧다. 다리가 길고 꼬리는 추레하며 구름 위를 날기 때문에 털은 풍성하나 몸은 깡말랐다 날개 달린 동물의 우두머리이며 선인이 타고 다닌다'라고 하였다. 학은 일반회화나 민화를 가리지 않고 널리 그려졌다. 공예품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학이 소나무나 복숭아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나무와 학의 관계는 기러기와 같대, 백로와 연꽃의 관계처럼 정형화되어 있다. 소나무와 학이 서로 짝을 짓게 된 것은 '송수 천년학 수만 년'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오랜 옛날부터 믿어온 장수 길상 관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과 소나무를 주제로 그리라는 제목의 민화가 있는데 이것은 옛날 중국 진시황제가 소나무에 대부의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와 관련하여 문관 일품의 복장에 새들의 우두머리인 학무늬를  쓴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나전과 화각 공예에서는 학과 복숭아나무의 조합도 빈번하게 사용하였다. 

이는 복숭아를 신물로 여긴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대부분의 학이 복숭아 열매가 달 린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학 무늬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 마름 형 구획 안에 쌍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마름형 구획 안에 중심 무늬를 배치하는 형식은 도자기나 금속기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면 한 쌍의 학을 배치하는 구성은 주로 기물의 천판에 보이는데 이 시기에는 도안회 된 수. 만권 자 등의 길상 문자를 중심에 배치하고 그 좌 소재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꽃 또는 포도 무늬와 함께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비의 형태는 조선 17, 18세기에는 사실적인 데 비해 19세기에 이르면 그 형태를 박쥐와 유사한 형상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벌의 표현에 가깝게 간략화시켜 시문 하는 경우도 있다. 그밖에 물고기 무늬나 두꺼비 무늬도 나전이나 화각공예에서 종종 나타나는 소재이다. 이 무늬들은 무늬 소재가 다양화되기 시작하는 조선시대 후기에 주로 등장하며 중심 무늬보다 보조 무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는 특성에 연유하여 부정한 것을 경계하고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 한 부부의 금실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는 동방의 바다에 산다는 전설적인 비목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다산의. 상징으로도 널리 애호되었다. 특히 두마 리의 물고기가 쌍으로 표현되는 경우에는 음양 화합을 상징한다. 

나전 공예에서 물고기 무늬는 대개 보조 무늬로 쓰였는데 이에 따라 연상이나 장, 농등면 분할이 많은 기물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여성용품에 많이 썼다. 물고기의 형태는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쏘가리, 메기 등에 종구 분이 확연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 두꺼비는 달을 상징하는 동물로 중국 고대 문헌에 그 연유가 잘 기록되어 있다. 에는 예뿌리는 활 잘 쏘 사람이 있었는데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청하였다. 이 불사약을 항아가 훔쳐먹고 선녀가 되어서 달 속으로 들어갔다. 그 뒤 달의 정이 되었는데, 달에 들어간 뒤 변하여 두꺼비가 되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에 연유하여 두꺼비가 달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기 나전과 화각 공예품에 보이는 두꺼비는 달의 상징보다는 길상의 의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존하는 나전 공예품에서는 두꺼비 무늬를 확인하기 어려운데,  화각함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함에서는 붉은 바탕에 하늘을 향해 몸을 젖힌 흙빛의 두꺼비를 비교적 사실적인 필치로 그렸다. 이 두꺼비 무늬도 여러 구획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무늬이므로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흔치 않은 무늬로 주목된다. 동물무늬는 나전 공예에서 17세기부터 봉황을 비롯한 날 짐승류를 보조 무늬로 사용하는 것이 시작이다. 19세기에는 나전 화각공예에서 공통으로 동물무늬의 소재가 다양해지며 크게 유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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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 공예에서 18세기 이전에는 국화무늬와 모란 덩굴무늬 일색이었던데 반해 18세기 전반경부터 화조 무늬를 보조 무늬로 쓰면서 차차 동물무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이후 19, 20세기에 이르면 민수 적 성격의 기물이 다량 제작되기 시작하면서 기복적 성격을 가진 십장생 등의 장생 무늬가 중심 무늬로서의 위치를 점하여 기복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화각 공예의 경우는 현존하는 유물의 대다수가 19세기 이후의 것으로 무늬 배치나 그 흐름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지만 대략적인 특징을 축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정방형은 면 분할을 적게 하여 각 면에 동물들을 한 쌍씩 시문 하였고, 장방형은 면 분할을 많이 하여 다양한 소재의 동물무늬가 한 면에 혼재하도록 배치하였다. 그리고 양자 모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천판 에는 형태와 상관없이 대부분 봉황과 학을 번갈아 배치하거나 대칭으로 마주 보게 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특히 장방형 화각함은 구획을 나누는 과정에서 여러 단의 면이 생기게 되는데, 대체로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가면서 물속 동물, 지상 동물, 천상 동물 순으로 구성하려 한 의도가 엿보인다. 나전과 화각 공예의 동물무늬는 단독으로 나타나기보다 다른 무늬와 조합하여 복합 무늬를 이룬다. 이러한 복합 무늬는 한 기물에 여러 주제가 함께 표현되는 경 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문갑에서와 같이 봉황과 오동나무무늬, 학과 복숭아나무 무늬, 거북과 연꽃무늬 등 여러 주제를 분할된 면에 한 폭씩 담아 병렬하거나 화각함처럼 각 측면에 서로 다른 주제의 무늬를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무늬 배치 형식은 공통으로 함이나 장, 문갑 등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점은 19세기 후의 나전과 화각 공예의 무늬 배치 형식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한편, 나전 함의 경우에는 십장생의 기복적인 무늬 가주종을 이루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기면은 다양한 무늬의 조합으로 여백 없이 메우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런 경우에는 함과 같이 대부분 앞면을 이등분하여 학과 복숭아 무늬, 사슴과 소나무 무늬를 조합하여 병렬 비 치하 거나, 거북과 물결무늬, 사슴과 소나무 무늬를 병치하는 등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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