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람 제국의 역사, 이슬람 제국의 팽창 - 두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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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

[ 이슬람 제국의 역사, 이슬람 제국의 팽창 - 두 번째 이야기 ]

by 지뇨떄라삐 202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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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부흥 사파비 왕조

사파비 왕조(1501~1732년)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 이후 이란 전역을 통합한 왕조로 이란의 전통문화 회복에 기여하였다. 사파비 왕조(1501~1732년)가 일어나기 전 이란 지역은 몽골의 침략으로 일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으며 일한국은 이슬람과 페르시아 문화에 동화되었다. 이후 티무르 제국이 등장하여 이란을 지배하였다. 티무르 제국이 몰락한 후 강력한 단일 왕조가 없던 이 지역은 군소 세력들의 다툼으로 정세가 매우 불안하였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정치적 보호와 영적 확신에 대한 백성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수피 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티무르 치하의 이란 북서부 쿠르드 출신 수피 종단의 지도자 사피 알 뎀(1252~1334년)이 시작한 사파비 운동도 그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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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들 사드르 알딘(1334~1391년)은 자신을 스스로 무함마드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사파비 운동을 체계적인 정치운동으로 발전시켰다. 15세기에 사파비 교단은 이란 북서부와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막강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사파비 왕조의 창시자인 이스마일 1세(재워 1501~1524년)는 스스로 숨은 이맘이자 알리의 환생이라 주장하며 세력을 모았다. 이스마일은 1501년 타브리즈를 정복하고 스스로 샤, 즉 '왕 선포하고 시아의 12이맘파를 이란의 공식 종교로 선포하였다. 이스마일은 10년 이내에 이란 전역을 정복하여 오스만 제국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란 국경이다. 이 시기 형성된 국경으로 무슬림 문화권은 오스만 튀르크, 이란, 내륙 아시아라는 별개의 성격을 가진 권역으로 나누어졌다. 이스마일 1세는 페르시아인 중앙 관료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통치체제 정비에 힘썼다. 사파비 왕조는 아바스 1세(재위 1588~1629년) 치세에 가장 번성하였다. 그는 국가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경제를 부흥하고 페르시아 고유의 특색을 지닌 이슬람 문화를 번영시켰다. 그가 건설한 새 수도 이스파한은 세계의 중심이라 불릴 만큼 번화했으며 이스파한의 바자르는 생산과 유통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아바스 1세 사후 국정이 혼란해졌으며, 아바스 2세 (재위 1642~1666년) 재위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쇠퇴 일로를 걷다가 1732년에 멸망하였다.

[요약]
-사피 알딘(1252~1334년)이 시작한 사파비 운동
-사피 알단의 아들 사드르 알딘(1334~1391년)은 자신을 스스로 무함마드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사파비 운동을 체계적인 정치운동으로 발전시킴.
-사파비 왕조의 창시자인 이스마일 1세(재워 1501~1524년)는 스스로 숨은 이맘이자 알리의 환생이라 주장하며 세력을 모았다.
그는 스스로 샤, 즉 '왕 선포하고 시아의 12이맘파를 이란의 공식 종교로 선포하였다.
-사파비 왕조는 아바스 1세(재워 1588~1629년) 치세에 가장 번성하였다.
-이스마일 1세는 페르시아인 중앙 관료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통치체제 정비에 힘썼다.
-사파비 왕조는 아바스 1세(재위 1588~1629년) 치세에 가장 번성함.
- 아바스 1세 사후 국정이 혼란해졌으며, 아바스 2세 (재위 1642~1666년) 재위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쇠퇴
- 1732년에 멸망

 

-인도의 무굴 제국 사파비 왕조가 건립될 무렵 이란 동쪽에 또 하나의 이슬람 제국이 융성하였다. 이는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통치한 무굴 제국(1526~1858년)으로 인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이다. 인도 지역에서는 굽타 왕조가 멸망한 뒤 여러 힌두 왕조들이 이어졌으며 13세기 초에 최초의 이슬람 왕조가 수립되었다. 이후 여러 이슬람 왕조가 북인도를 중심으로 교체되었으며, 16세기 초에 무굴 제국이 건립되었다. 무굴 제국의 창시자는 중앙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까지 정복했던 티무르의 후손 바브 2(재위 1526~1530년)이다. 몽골을 뜻하는 무굴은 '몽골'의 후손이 창시한 나라라는 뜻이다. 바브르는 사마르칸트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티무르의 옛 영광을 되찾고 싶어 하였으나 이에 실패하자 인도를 침공하였다. 1504년 카불과 간다라 지역을 점령하고, 델리를 수도로 삼은 이슬람 왕조를 멸망시키고 무굴 제국을 건립하였다. 이 시기에 이슬람은 인도에 파고들었으며, 이슬람 문화가 힌두 문화와 융합하여 궁중을 중심으로 인도 이슬람 문화가 만개하였다. 제3대 아크바르 대제(재위 1556~1605년)는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북인도를 점령하고 남부 데칸까지 차지하여 마우리아 왕조 이후 인도의 단일왕조로서는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였다. 그는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종교적으로도 포용 정책을 써서 제국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5대 샤자한(재위 1627~1766년)의 시대에는 예술과 건축이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사랑하는 왕비를 기리기 위해 22년에 걸쳐 지은 타지마할은 무굴 건축의 백미이며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 으로 일컬어진다. 제6대 아우랑제브 황제(재위 1658~1707년)는 데칸 지역의 여러 이슬람 왕조를 정복하여 무굴 제국의 최대 영토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재위 말기에는 오랜 정복 활동으로 인한 재정적 위기와 힌두교도들에 대한 차별 정책 등으로 제국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데칸 지역에 마라타동맹이 결성되어 인도 남부와 서부를 장악함으로써 무굴제국의 중앙권력은 크게 약화하였다. 이후 무굴 제국은 국력이 급속히 약화하여 인도 각지에 여러 개의 작은 왕조들이 들어섰으며,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마지막 황제 바 하두르 샤2세는 영국 식민 통치가 시작된 후 일어난 폭동을 주도하였다는 혐의로 추방되어 미얀마에서 사망하였다.

[요약]
- 무굴 제국(1526~1858년)으로 인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임.
- 13세기 초에 최초의 이슬람 왕조가 수립
- 티무르의 후손 바브 2(재위 1526~1530년) 16세기 초에 무굴 제국이 건립.
-1504년 카불과 간다라 지역을 점령하고, 델리를 수도로 삼은 이슬람 왕조를 멸망시키고 무굴 제국을 건립.
- 제3대 아크바르 대제(재위 1556~1605년)는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인도의 단일왕조로서는 최대의 영토를 확보함.
- 5대 샤자한(재위 1627~1766년) 의 시대에는 예술과 건축이 크게 발전함.
-제6대 아우랑제브 황제(재위 1658~1707년)는 데칸 지역의 여러 이슬람 왕조를 정복하여 무굴 제국의 최대 영토를 확보.
-재위 말기에는 오랜 정복 활동으로 인한 재정적 위기와 힌두교도들에 대한 차별 정책 등으로 제국의 기반이 흔들림.
-데칸 지역에 마라타동맹이 결성되어 인도 남부와 서부를 장악함으로써 무굴제국의 중앙권력은 크게 약화함.
-마지막 황제 바 하두르 샤2세는 영국 식민 통치가 시작된 후 일어난 폭동을 주도하였다는 혐의로 추방되어 미얀마에서 사망.


이번 포스팅에는 페르시아의 부흥 사파비 왕조에서 부터 인도의 무굴 제국까지 이슬람 문화의 이해와 역사에 대해서 시대적 순서대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이슬람 문화는
다음 포스팅에서부터는 이슬람 미술의 특징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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