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제국의 발전: 아바스 왕조의 성립과 발전
아랍 민족 중심의 우마이야 왕조와 달리 아바스 왕조(750~1258년)는 아랍의 특권적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제국 내의 민족적,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고자 하였다. 후대 역사가들은 아바스 왕조를 최초의 진정한 이슬람 제국으로 칭한다. 아바스 왕조 시대에 동서양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경제적 안정과 번영을 바탕으로 대제국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번영을 바탕으로 아바스 왕조는 동서양 문화를 융합한 독창적인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다. 아바스 왕조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2대 칼리프인 알 만수르 (재위 745~775년)이다. 그는 반대 세력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아바스 왕조의 통치를 공고히 하였으며, 바그다드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였다. 아바스 왕조 전성기에 이 도시는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하였으며 동서 교역과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다. 알 만수르는 광대한 영역을 통치하기 위해 관료제를 복구하고 제국 전역에 총독을 파견하였다. 아바스 왕조는 5대 칼리프이자
「아라비안나이트」의 등장인물의 한 명인 하룬 알 라시드(재위 786~809년) 와 그의 둘째 아들인 7대 알마문(재위 813~833년) 시대에 절정을 맞았다. 이 시기에는 육로에 이어 해상비단길이 개척되었으며, 신라와의 교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마문이 설립한 연구 기관 '지혜의 집'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었으며, 이를 발판으로 문학, 철학, 의학, 자연과학 등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성과가 후대 유럽에 전해져 유럽의 르네상스와 근대의 토대가 되었다. 아바스 왕조는 번영의 최고점에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쇠락 의중요 원인은 8대 칼리프 알무타심(재위 833~842년)이 고용한 맘루크들에게서 비롯되었다. 노예 신분의 군인을 뜻하는 맘투크 집단은 알무타심이 튀르크 출신의 용병들을 궁중의 호위 방으로 고용하면서 형성되었다. 맘루크는 지연적, 혈연적 관계가 없었으므로 칼리프에게만 충성을 바치고 제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효과적인 친위대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칼리프의 신임을 통해 권력을 갖게 되자 곧 칼리프를 마음대로 바꾸거나 살해하기까지 하였다. 여기에 내분과 이민족의 침입 등이 이어지면서 각 지역에 독립 왕조가 발홍하여, 10세기 중반에는 더 이상 아바스 왕조의 영향력이 제국 전체에 미치지 못하였다.
한편 우마이야 왕조가 아바스 왕조에 의해 멸망되었을 때, ,우마이야 왕족 알라흐만 1세(재위 756~788년)가 살아남아 스페인으로 이주하였다. 이 지역은 713년 우마이야 왕조가 정복했던 곳으로 그 가문의 지지 세력이 남아 있었다. 라흐만은 756년에 코르도바를 점령해 수도로 정하고 우마이야 왕조를 다시 일으켰다. 이를 후기 우마이야 왕조(756~1031년)라 한다. 제8대 알 라흐만 3세(재위 912~961년)는 분열된 스페인을 다시 통일하고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는 종전까지 아바스 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에미르'라는 호칭 대신 자신을 스스로 칼리프라고 칭하였다. 바그다드와 코르도바에 두 칼리프가 공존했으므로 이 시기를 동서 칼리프 시대라고도 한다. 두 세력은 정치적으로 대립하였으나 문화경제 교류는 활발하였다. 후기 우마이야 왕조의 건축을 비롯한 예술은 이슬람 양식과 스페인 양식을 혼합하여 조화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이슬람 사원인 코르도바 대모스크는 라흐만 1세 때부터 지어 200여년 간 계속 건설되었다. 이 모스크는 이슬람이 이 지역의 지배력을 상실한 후성당으로 개조되었다. 10세기 전성기의 코르도바는 유럽 최대의 도시이자 이슬람의 중심지였으며, 코르도바가가 속한 안달루시아에서 서구 이슬람 문화가 번영하여 중세 서유럽의 사상이나문예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후기 우마이야 왕조는 11세기에 접어들면서 국력이 쇠퇴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멸망하고 여러 소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이 왕국들은 대부분 기독교 세력에 정복되었으나 나스르 왕조(1231~1492년)는 그 세력을 유지하였다.
순서대로 정리 해 보자면
① 우마이야 왕조와 달리 아바스 왕조(750~1258년)
-칼리프인 알 만수르 (재위 745~775년) : 아바스 왕조의 실질적인 창시자
② 하룬 알 라시드(재위 786~809년)
-아바스 왕조는 5대 칼리프이자 「아라비안 나이트」의 등장 인물의 한 명인 하룬 알 라시드와 그의 둘째 아들인 7대 알마문(재위 813~833년) 시대에 절정을 맞았다.
③ 8대 칼리프 알무타심(재위 833~842년)
-아바스 왕조는 번영의 최고점에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쇠락 의중요 원인은 8대 칼리프 알무타심 고용한 맘루크들에서 비롯되었다.
-맘루크는 지연적, 혈연적관계가 없었으므로 칼리프에게만 충성을 바치고 제국의안전을 지킬 수 있는 효과적인 친위대가 될 것으로 기대.
-내분과 이민족의 침입 등이 이어지면서 각 지역에 독립 왕조가 발홍하여, 10세기 중반에는 더 이상 아바스 왕조의 영향력이 제국 전체에 미치지 못하였다.
④ 아바스 왕조에 의해 멸망.
⑤우마이야 왕족 알 라흐만 1세(재위 756~788년)가 살아남아 스페인으로 이주.
⑥우마이야 왕조(756~1031년)
-라흐만은 756년에 코르도바를 점령해 수도로 정하고 우마이야 왕조를 다시 일으켰다. 이를 후기 우마이야 왕조(756~1031년)라 한다.
⑦제8대 알라흐만 3세(재위 912~961년)는 분열된 스페인을 다시 통일하고 황금시대를 열었다.
⑧후기 우마이야 왕조는 11세기에 접어들면서 국력이 쇠퇴하고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멸망.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슬람 제국의 분열과 다원화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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