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제국의 분열과 다원화
10세기 이후 이슬람 제국 각지에서 여러 독립 왕국들이 발흥하면서 이슬람의 보편성과 함께 지역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문화가 각지에서 성장하였다. 이슬람적 모티프를 현지의 문화유산과 혼합한 독자적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이집트와 시리아 등지에 여러 독립 왕조가 등장했는데, 그중 하나인 파티마 왕조(909-1171년)는 바그다드의 아바스 왕조와 힘을 겨를만큼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북아프리카를 통치한 이 왕조는 시아파의 한 분파인 이스마일파에 의해 건립되었다. 아바스 왕조는
시아파에 힘입어 우마이야 왕조를 멸망시켰으나 이후 수니 신앙을 정통으로 받아들여 시아파들의 불만을 샀다. 그리하여 시아과 중에서 유력한 이스마일파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사이드 빈 후세인이 북부 아프리카를 차지하고 있던 아글라브 왕조(800~909년)를 뒤엎고 새로운 시아과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들이 왕조의 이름을 무함마드의 유일한 딸이자 알리의 아내인 파티마로 정한 것은 이 왕조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파티마 왕조는 921년에 모로코에 있던 이드리스 왕조 (789~926년)마저 무너뜨리고, 아랍인들이 정복했던 북아프리카의 서부 아람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집트를 정복한 파티마 왕조가 건설한 카이로는 정치, 종교, 경제는 물론이고 학문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최고 수준을 자랑하였다. 972년에 세운 알아즈하르 대모스크는 시아 이스마일과의 교리를 가르치고 전하는 학문과 교리의 전당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 할 수 있다. 과티마 왕조는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1169~1252년)에 멸망하였다.
-동부의 이슬람 제국
동부 이슬람 세계에는 사만 왕조(819~1005년), 카라한 왕조 (992-1212년) 가즈니 왕조(977-1186년) 부와이 왕조(945~1055년) 등이 세워졌다.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북쪽 지역에서 발흥한 페르시아계 사만 왕조는 이슬람이 이란, 트란속시아나, 호라산 등을 점령한 후 페르시아인이 세운 최초의 왕조로 페르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부활시켰다. 이 왕조의 전성기에는 동서무역의 요충지인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바그다드에 필적할 정도로 번성했으며, 튀르크족에게 이슬람을 전파하였다. 이후 사만 왕조는 카라한 왕조에 의해 멸망하였다. 카라한 왕조는 중앙아시아에 건설된 최초의 튀르크계 이슬람 왕조이다. 그 주민들은 960년경 대규모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이 왕조는 1042년 통서 카라한조로 분열되고 이후 셀주크 제국에 병합되었다. 사만 왕조에서 독립한 가즈니 왕조는 호라산, 아프카니스탄, 인도 북부를 차지하였다. 사만 왕조의 뒤르크게 맘무크 출신이 창시한 가즈니 왕조는 튀르크게 왕조로서는 최초로 이란 지역을 정복하였으며, 가즈니 왕조의 전성기를 이문 술탄 마무드(계위 998-1050년)는 자신을 스스로 이슬람 세계의 공동 지배자로 임명해 술탄이라는 새로운 칭호를 선택하였다. 최초의 술탄이 된 마무드가 인도 지역을 침공함으로써 인도에 페르시아와 이슬람 문화가 유입되었으며 페르시아어도 전해져 인도어에 영향을 미쳤다. 가즈니 왕조는 새로운 강자 셀주크 튀르크의 공격을 받아 약화하여 소왕국으로 전락하였으며, 결국 가즈니 왕조에 예속되었던 구르 왕조(아프가니스탄 1186~1215년, 인도 1173~1206년)에 멸망하였다. 이란 남서부와 이라크 지역을 지배한 부와이 왕조는 이란의 시아파에 속하는 부와이 가문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 945년에 부와이 가문의 아마드가 군을 동원하여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자 칼리프는 아마드에게 최고 사령관의 지위를 주었다. 이후 이 왕조의 지배자들은 칼리프를 마음대로 폐위시키면서 사실상 아바스 왕조를 지배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칼리프 제도를 폐하지 않고 무슬림 수장의 지위를 명목적으로 보장하는 대신, 술탄의 칭호나 의복, 왕관 등을 받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통치를 합법화하였다. 부와이 왕조의 동부 영토는 1029년에 가즈니 왕조에 병합되었고, 1055년에는 셀주크 뒤르크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셀주크 뒤르크의 번영과 아바스 왕조의 멸망
751년 고구려의 유민 고선지 장군이 이끌던 당나라 군대가 아바스 왕조의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중앙아시아는 이슬람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지역에 거주하던 튀르크족은 9~10세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셀주크 튀르크의 등장 이후 아랍인들을 대신해 튀르크족이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으며, 튀르크족의 다양한 문물이 이슬람 사회에 스며들었다. 셀주크 뒤르크는 오구즈 뒤르크 족의 일과로, 셀주크라는 이름은 족장 셀주크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10세기 중엽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부근으로 이주하였으며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1040년 가즈니 왕조에 이어 이란 북동부 호라산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이것이 이후 지속된 셀주크 왕조의 시작이다. 셀주크의 손자 투그릴(1063년 사망) 은 1055년 아바스 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로 입성하여 부와이 왕조로부터 지배권을 넘겨받고 술탄이 되었다. 그러나 아바스 왕조 칼리프의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권위는 그대로 인정하였다. 투그릴을 이은 그의 삼촌 알프 아르슬란(제위 1063~1072년)과 다음 술탄 말리크 샤(재위 1072~1092년)의 재위 기간에 셀주크 제국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알프 아르슬란은 서쪽으로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진출해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하였다. 1071년 아르슬란은 만지케르트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를 포로로 잡았다가 콘스탄티노플로 돌려보낸 후. 아나톨리아를 셀주크 제국의 영토로 삼고 공물을 바치게 해 서양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말리크 샤의 시대에는 이집트까지 정복해 셀주크의 영토가 알타이산맥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이르렀으며, 이란의 중심부에 있는 이스파한을 수도로 삼았다. 튀르크족이 세운 이 이슬람 제국은 페르시아인 재상 니잠 알물크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그는 조세 제도를 바로잡고, 마드라사라는 학교를 각지에 세워 이슬람 사회의 관료가제 사람들에게 동일한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말리크 샤의 후계를 둘러싼 권력 다툼으로 제국에는 내분이 일어났다. 1157년 술탄 아마드 산자르가 사망하자 셀주크 왕조(1038~1194년)는 세력이 약화하여 여러 소국으로 분할되었다 한편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아르슬란이 비잔티움 제국을 격퇴함으로써, 아나톨리아에 대한 튀르크족의 정착과 진입이 가속화되었다. 이들 가운데 소아시아 방면의 군사 지휘자였던 술레이만(재위 1077~86년)이 아나톨리아에 또 하나의 셀주크왕조를 세웠다. 이를 로마의 영토를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룸의 술탄' 또는 '룸의 셀주크 왕조'라 불렀다. 룸 셀주크 왕조(1077~1307번)는 십자군과 비잔티움 제국에 맞서 아나톨리아를 약 200년 동안 지배하여 소아시아의 튀르크화 및 이슬람화를 촉진하였다. 이처럼 11세기 후반부터 셀주크 튀르크가 아나톨리아로 진출하면서 유럽의 십자군 운동이 유발되었다. 당시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무슬림들에게 공통의 성지가 있어 이들이 성지순례를 하면서 충돌이 벌어지기 쉬운 곳이었다. 파티마왕조가 지배하던 예루살렘을 이슬람 세력에서 탈환한다는 목표로 1095년 1차 원정을 행한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다.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던 이슬람 세계는 십자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점령된 이슬람 도시들은 모두 파괴되고 주민들은 학살당하였다. 북아프리카의 파티마 왕조를 무너뜨리고 1169년 아유브. 왕조를 세운 살라딘(제위 1169~1193년)이 예루살렘을 회복하였다. 십자군이 정복자들을 몰살했던 것과 달리 살라딘은 투항자들에게 생명과 자비를 베풀어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이 되었으며, 적대 세력인 프랑크 인들에게서조차 칭송받았다. 그러니 그가 죽자 후계자들 사이의 분쟁으로 이내 쇠락하여 맘루크 왕조에 멸망하였다.
십자군 원정은 8차에 걸쳐 계속되었으나 사실상 유럽은 이슬람 세계를 장악하는 데 실패하였다. 십자군의 원정 동안 유럽은 이슬람 문명의 발전상에 놀랐으며,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그리스·로마 문화를 유럽에 전함으로써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발송할 수 있었다. 또 실질적으로 동방의 무역로를 확보하려던 목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상인들에 의해 동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십자군의 공격을 받은 룸 셀주크 왕조는 수도를 니케아에서 내륙에 있는 코니아로 옮겼다. 코니아는 12~13세기 전반에는 이슬람 세계와 서방 기독교 세계 사이의 교역 거점으로서 번영하고, 궁전, 모스크, 마드라사 등의 새로운 튀르크 양식의 건축으로 장식되었다. 룸 셀주크 왕조는 1219년 알라에딘 케이 쿠바드 1세(재위 1219~1237년)가 즉위하면서 황금기를 맞이하여 각 방면에서 문화의 꽃을 피웠다. 그러나 그의 사후 튀르크족의 반란과 몽골군의 침입이 시작되어, 1243년에는 몽골 원정군에게 패하고 일한국의 속주가 되면서 쇠퇴했고, 1308년에 마지막 술탄이 사망함으로써 멸망하였다. 몽골 초원에서 발흥한 칭기즈칸의 원정대는 순식간에 유럽 중부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을 초토화하고 서구 뿐 아니라 이슬람 세계의 문명에 엄청난 타격을 해주었다. 칭기즈칸이 원정 도중 사망하자 그의 아들과 손자들의 정복이 계속되었다. 이 가운데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를 차지한 것이 홀라구이다. 그는 이란 원정길에 올라 1258년 바그다드를 공략하여 아바스 왕조의 최후 칼리프를 처형하였다.
이로써 명목상 유지되었던 아바스 왕조가 마침내 멸망하였다. 홀라구는 1259년에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일한국을 건설하였다. 그는 몽골의 서아시아 통치 영역을 지중해 연안까지 확장하려 하였고 다마스쿠스까지 손에 넣었으나 1260년 시나이반도의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이집트의 맘루크 군에 패하여 그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몽골의 원정은 이슬람 문명을 파멸시켰으나 이후 몽골 군주들은 가잔 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편입되었다. 이 개종은 몽골- 튀르크계의 지배층과 이란계의 피지배층을 융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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