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이란? 두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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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

[이슬람이란? 두번째 이야기 ]

by 지뇨떄라삐 202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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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단일성과 다중성 
이슬람 사회는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할 때까지 체계화된 정치 제도가 정립되지 않았으며 다만 이슬람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의 기초만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의 급속한 팽창은 놀랄 만한 일이다. 초기 이슬람의 급속한 팽창은 뛰어난 군사 전략과도 관계가 있다. 이슬람 부족은 수 세기에 걸쳐 실전을 통해 다진 기습 공격에 능숙하였으며 성스러운 메시지를 전파하겠다는 이념으로 공격을 합법화할 수 있었다. 이슬람 초기에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군사적 충돌로 약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원인만으로는 이미 사회 문화적 전통이 깊이 뿌리내린 지역에서 이슬람의 급속한 확산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슬람이 다른 사람을 무리하게 개종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슬람이 급속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는 이슬람의 특징인 '관용의 정신 형성에 기여하였다. 관용의 정신은 이슬람의 경제적 번영과 체계화된 사회적 구조 촉진에도 일조하였다. 무슬림은 종교적 교리를 엄수하면서도 새로 정복한 영토 내에서 직면하게 된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였다. 이슬람의 통치 체계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은 물론 이해와 적용이 쉽고 공동체의 강력한 결집에 효과적인 몇몇 다른 명령과 지시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쉽게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율법(샤리아, Sharia)은 쿠란과 하디스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율법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부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움마'는 이슬람 법률학자인 '올라마 (Ulama)'의 해석을 따랐다. 한편 법학자들의 해석이 일치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유효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며,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이슬람을 '다중적'이라고도 한다.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운 개념일 수도 있지만, 이슬람에는 가톨릭교회의 교황과 비견되는 최고의 종교적 권위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쿠란은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하며, 특히 특정 분파나 집단에는 신비적인 해석의 가능성도 제공한다. 이슬람의 신비주의자인 '수피'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거친 양털 옷을 입은"이라는 뜻의 수피들은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하였으며, 이슬람 초기에 샤머니즘을 숭배하던 이 지역의 이슬람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슬람 내의 초자연적 기질이 이들 지역의 전통 종교와 이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주요 사례는 오스만 제국의 제10대 술탄인 술레이만 1세(제위 1520~1566년)가 만든 술레이만 법전이다. 술레이만은 서구에서는 술레이만 대제로 불리고 있으나 튀르크인들에게는 "법전을 하사한 이"로 불리며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제위 482~ 565년)와도 비견된다. 법전은 오스만 제국의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아우르는 기능을 하였다. 이슬람의 다중성은 긍정적인 영향만 미쳤다고는 볼 수 없으며 모순점 또한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을 획일적인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오늘날 이슬람을 획일적으로 보는 왜곡된 시각이 이슬람 세계 안팎에 만연해 있다. 내부적으로는 근거 없고 역사적 지식이 부족한 범아랍 민족주의로 인해, 외부적으로는 무슬림을 보복행위와 일방적 관점을 강요하는 집단으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이다. 이와 같은 외부 세계의 인식은 본인들의 역사와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 이슬람 사회 내의 과격한 집단의 태도로 인해 조장되고 과장되어 왔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는 이슬람의 역사와 이성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인식과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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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계사적 관점에서 본 이슬람의 영향 
이슬람 세계의 지리적 영역은 스페인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실로 방대하다. 유럽 지역만 해도 시칠리아섬과 발칸반도의 상당 부분, 그리고 형가리를 비롯한 중부 유럽의 여러 지역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였다. 이러한 지역에 중세부터 뿌리내린 이슬람 세계의 전통은 더 먼 곳까지 확산하였다. 예를 들어 남미에서도 기하학무늬 등 이슬람 예술의 전통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초기 스페인 식민 통치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슬람은 발생부터 오늘날까지 1,400여년에 걸쳐 세계 문명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이 시기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인도를 포함하여 동남아시아에 이르렀으며 이미 이슬람 초기부터 중국 연안에 이슬람 상인들이 정착하면서 이슬람 세력은 빠르게 팽창하였다.

 이슬람의 본거지인 아라비아반도와 인근 부족의 아랍인들은 곧 타지역 민족과도 융화되었는데, 이들 중 페르시아인과 튀르크인들이 가장 돋보이는 문화적 발자취를 남겼다. 전통적으로 이슬람에는 3개의 주요 언어가 존재하였다. 종교, 철학 분야와 함께 과학 분야의 '아랍어', 무역은 물론 시와 종교를 비롯한 신비적인 분야의 언어가 된 '페르시아어', 예술과 문화 전반은 물론 군대 언어인 '터키어'가 바로 3개 주요 언어이다. 여러 소수 민족이 어우러진 이슬람 세계는 소수 민족 간 언어적 차이뿐만 아니라 종교적 성향에도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종교 성향과 민족의 사회적 상호작용은 무슬림 체제를 축소하거나 파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결집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언어뿐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이 장기적으로는 문명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무슬림의 문화는 쿠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삶과 활동이라는 공통된 기반을 지니면서 현지의 토착 전통과 융화되어 더욱 풍요롭게 발전하였다. 여기서 무슬림 문화가 가진 다중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후대에 이슬람 문화를 '다양성 가운데 I통합'이라고 평가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정치적 차원에서 이맘 알리의 추종자들인 시아파와 정통 수니파 간의 분열은 거의 이슬람 성립 직후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두종파는 이슬람 교리에 대한 해석에서도 현저하고 극명한 시각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두 종파 사이에 상반되는 정서로 강력하게 표출되기도 하지만, 어느 종교에서든지 무슬림 세계 내의 상호 관용을 통해 공존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특성은 어느 종교에서든지 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혹은 예술적 제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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