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나전과 화각 공예]
나전은 조개껍데기를 가공하여 자개를 만들고, 자개로 무늬를 만들어 칠 면에 장식하는 칠기 장식 기법이다. 나전에서 '나'는 나선형의 껍질을 지닌 조개류를 두루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전'은 금속관을 새겨 넣은 꾸밈을 뜻하여 감장한다는 말로써 조개껍데기를 박아 장식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전이라는 말은 넓은 의미로 다양한 종류의 조개나 대모, 상아 ,호박 등의 보석류를 칠기에 새겨 넣어서 장식하는 기법을 일컫는 것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나전 공예 작품이나 그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은 고려시대의 예가 많이 알려져 있다. 중국 당대에는 나전 공예라 할 수 있는 유물 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유행하였다. 동시대에 같은 문화를 향유하였던 통일신 라에서도 그러한 영향에 의해서 나전칠기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이미 기원전 4세기경부터 나전칠기의 기원이 된다고 할 수가 있는 칠기가 제작되고 있었으므로 독자적인 나전칠기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재료 나 관련 기법 등의 기술력을 비롯한 제반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통일신라시대에는 공장 부에 금전,철유전,
와기전과 함께 칠 전이라는 왕실의 식기를 담당하던 부서가 존재하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과 나전칠기와 관련되는 칠 공예품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기원을 살펴보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본다.
[나전 공예의 기원]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기원을 살펴보는 데 서막을 여는 자료는 낙랑(기원전 108~ 기원후 313)의 채화 칠 협의다. 1916년 평양 근교의 낙랑고분에서는 칠 기류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출토품 중에서도 채화칠 협은 내주 의혹을 기본으로 흑 칠 바탕에 주, 황, 녹, 청, 적 으로 다양하게 채색하여 무늬를 그리는 채화 기법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부 유물에서는 침 각이나 대모 복채기법, 시회기법 등으로 무늬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에서 칠기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도 기원전 4세기경에는 칠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전문적으로 보유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충청남도 아산 신창면 남성리 석관묘에서 출토된 옻칠 편수들은 칠기의 성분 분석 결과 낙랑 칠기와는 다른 칠기 제작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판명되어 이러한 추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후 원삼국시대(기원 전후-300년경)의 유적지인 창원 다호리,광주 광산구 신창동 등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칠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다호리 유적의 제1호분에서는 원형과 정방형의 칠 두를 비롯한 칠필관, 칠궁 등 20여 점의 칠기가 출토되었는데, 이 출토품들은 단순히 옻나무에서 채취된 자 연 칠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가공과 정제의 과정을 거친 칠을 사용하고 있다.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삼국에서는 각기 칠기를 생산하였고, 그 유물들을 통해서 제작 기술이 향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강서고분에 서는 건칠관의 일부가 수습되었으며, 우현리 고분의 종묘에서는 채화 흑 칠기가 발견되었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백제 고분에서는 칠관, 칠 궤, 칠 반이 출토된 바 있고, 공주 무령왕릉에서는 칠 관을 비롯하여 채화두 침 , 채화금장족좌 등 완형에 가까운 칠 공예품이 출토되어 백제 칠기의 수준을 가능하게 해준다. 신라의 5세기 이후 고분에서도 상당량의 칠기 류가 발견된다. 그 예가 시원적인 평탈과 감장 기법으로 장식된 경주 호우 총출토 칠 전통이다. 이상의 삼국시대 칠 기류 대부분이 의례품인 점으로 볼 때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한정적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상생활 용기로서 칠기의 사용이 보편화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이다. 이러한 사실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명문 칠판과 목 십칠 대접 목심 칠 연을 비롯한 33점의 칠기와 100여 점에 달하는 칠기 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통일신라시대에는 칠기에 금이나 은판을 무늬에 따라오려 붙이고 다시 옻칠한 다음 표면을 연마하여 금 은판이 나타나도록 하는 평탈 기법이 등장하였다. 평 탈은 칠기를 장식하는 새로운 기술로서 나전 기법과 유사점이 많아 그 기초가 되는 기법으로 평가된다.
표현하는 평탈 기법은 통일신라시대 목공 예의 새로운 기술적인 역량을 말해줌과 동시에 나전 기법과 유사한 면이 많아서 나전 기법의 밑거름이 되는 기술로 인정된다. 평탈을 사용한 목공예품의 대표적인 예로는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은평탈회형장식’이나 도쿄박물관 ‘소장 은평탈육각합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금 은평 탈보 상화문경’을 들 수 있다. 평탈기법은 통일신라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칠기 문화의 전통 위에 당대의 선진 기술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왕실이나 귀족 등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제례와 관련된 특수한 용도의 기물을 칠기로 제작하였다. 그 후 삼국의 칠기 제작 전통을 계승 한 통일신라는 당과의 밀접한 문화 교류 속에서 새로운 칠기 장식 기술을 수용하였으며, 그 예로 평탈 기법을 들 수 있다. 나전 공예는 ·평탈 기법과 장식 재료상의 차이만 있을 뿐 제작 공정은 거의 흡사하여 이 시기에 이미 나전 공예품의 제작 여건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지가 확실치 않아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리움 소장의 ‘나전단화금수문경’은 적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당에서 도입된 나전 공예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나전 공예품을 제작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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