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미술의 특징-세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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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

[이슬람 미술의 특징-세 번째 이야기 ]

by 지뇨떄라삐 202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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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슬람 미술의 다원성
이슬람 문화를 다원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슬람 예술 또한 그렇게 간주해야 한다. 이슬람의 성지순례뿐 아니라, 사회적 관습 및 구조, 정치적, 역사적 변화 등으로 인해 이슬람 사회는 매우 역동적이었다. 이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이슬람 사회의 예술적 배경이 되었으며 모든 요소는 서로 양립하거나 현지의 전용 뭐 부가되었다.

 
이슬람 예술은 다양한 외적 영향에 의해 형성된 요소들을 토대로 한 조합의 예술이다. 이슬람 문화는 외부의 영향을 매우 빨리 수용하였으며, ,이러한 변화 역시 매우 빠른 속도로 다시 전파되곤 하였다. 금속 광역 기법을 사용한 '러스터(luster) 장식 도기'는 이러한 점을 증명해주는 예이다. 도기를 산화 금속(은과 구리의 합금을 가장 흔히 사용)이 포함된 안료로 채색한 다음, 환원 반응이 일어나는 특수 가마 안에서 굽는 금속광택 기법은 매우 정교하고 제작 비용 또한 많이 들었다. 이 기법은 9세기경 이라크 남부 지역에 서서 기원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나, 이미 같은 시기 시리아와 이집트에서도 러스터 도기가 생산되고 있었다. 그 기원지가 어디이든 정말 주목할 점은 이러한 유형의 도기가 퍼져나간 속도이다. 이는 이슬람 문화의 역동적 특성을 잘 보여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 이라크에서 제작된 중국풍 도자기 역시 이슬람 사회의 역동성을 증명해준다. 중국 도자기는 당시 서아시아 지역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수출되어 현지 도자 산업을 위태롭게 하였다. 이라크에서는 당시 유행한 중국풍 도자기의 기형을 모방하여 녹청색 유약으로 장식한 도자기를 제작하였다. 이러한 중국풍 그릇에서 우리는 이슬람 미술이 다양한 요소를 수용하여 그것을 발전의 토대로 사용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교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시리아 지역의 건축물 양식 중에 밝고 어두운색의 돌을 교차시켜 장식하는 아블라크 (ablaq)는 십자군으로부터 도입된 서구의 영향을 보여준다. 시리아 지역의 유리공예 발달 또한 주목된다. 유리 공예품들은 중세의 유명한 구호기사단(Knights Hospitaller) 의 이동 경로를 따라 발굴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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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당시 시리아의 유리 공예가 발달하는 과정과도 일치한다. 한편 무슬림이 수 세기 동안 정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아프리카에는 고유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현지 부족의 성향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점은 미술품에 반영되어 있다. 스페인의 사례 역시 주목할 만하다. 스페인의 우마이야 왕조 (후기 우마이야 왕조)의 코르도바 대모스크는 건축적으로 로마 수로의 구조를 상당 부분 모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스크의 미흐랍 주변 공간과 미흐랍에는 예루살렘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유래한 이슬람의 유리 모자이크 공예가 사용되었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 멸망 후 스페인으로 이주한 후기 우마이야 왕조가 지니고 있던 시리아의 예술적 전통에 대한 향수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란의 문화적 영향권 하에 놓인 지역은 지중해와 아시아 내륙 간의 역사적, 지리적 교차로이자 예술의 만남과 발전의 중심지로 다원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란과 동부 이란 지역(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이 도록에서 소개하듯이 예술품이 지속해서 생산된 곳이며 생생한 예술 전통과 장인 정신이 계승된 곳이다. 마지막으로 인도는 이슬람의 성향과 현격히 다른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 고대 문명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슬람과 오랜 경쟁 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이슬람에 융화되었다. 인도 문화는 오랜 기간 이슬람 문화와 별도로 논의되어 왔으나, 이 도록에서는 이슬람 미술사에 중대한 기여를 한 독창적인 문화라는 개념으로 인도 미술을 소개한다. 이처럼 교역과 대상(除商), 유목민 집단의 이동, 성지 순례, 전쟁은 모두 이슬람 미술의 기술과 도상(圖像)이 각지에 퍼지도록 하는 데 기여하였다. 물론 지역의 전통적인 요소에 따라 지역적인 변형이 이루어지거나 보수적인 요소들은 변화 없이 유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슬람 미술만의 본질적인 요소들인 서예, 기하학무늬, 아라베스크 무늬는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이슬람 이전에는 표현 매체에 따라 다른 무늬가 사용됐지만, 이슬람 미술에서는 매체 간에 장식 모티프와 기법이 활발히 교환되었다. 즉, 직물에 사용된 무늬가 금속 공예품이나 도자기에 사용되는가 하면 건축에 사용된 모티프가 유리 제품에 사용되기도 한 것이다. 이슬람 미술의 형성과 발전 과정은 역사적인 큰 사건과 연관성이 많지는 않다. 광활한 지리적 공간과 오랜 기간의 세분된 역사 속에서, 예술적인 전환점으로 볼 만한 시기는 많았지만 어떤 특정한 시기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9세기 사마라도 그중 하나다.
티그리스강 기술에 위치하며 바그다드 이후 아바스 왕조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833년부터 60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존재하였다. 건물 대부분은 진흙 벽돌로 매우 단기간에 세워졌으며, 사마라는 짧은 기간에 건립되고 갑자기 사라진 도시의 상징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여러 지역 출신의 수많은 예술가와 장인, 군인들이 이 도시의 건설에 동원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부 변형되기는 했지만 널리 유행했던 흥미롭고 통일된 장식적 요소가 발견되었다. 특히 가장 주목할 요소는 건물 마감재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스투코 패널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에 사용된 장식적 모티프이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 시대 때부터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표현된 장식적 모티프에는 초기 형태의 기하학무늬와 추상적으로 양식화된 아라베스크 무늬와 함께 보다 성숙하고 독자적인 표현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다. 이슬람 미술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의 하나는 몽골의 이란침략이다. 몽골의 침략으로 이슬람 세계는 큰 손실을 겪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아시아를 통해 중국 등 새로운 예술적 요소가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 이슬람 미술의 장식에 중국풍의 용, 연꽃, 모란 등이 유입되었다. 따라서 이슬람 예술은 주변의 다양한 영향을 수용하여 이전보다 더 성숙한 표현이 이루어졌다. 몽골족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도 전투를 벌였으며, 이에 따라 맘루크 왕조 미술에도 중국의 미술 양식이 유입되었다. 15세기 역시 이슬람 미술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꼽을 수 있다. 이 시기는 이슬람 세계에 '국제적 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양식이 등장하여 다양한 매체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지중해 연안과 유럽 내륙 지역은 지중해 건너편 지역과 정기적인 교역을 통해 접촉하였다.
교역 과정에서는 상품과 함께 선물과 미술품이 교환되었는데, 당시 거래자들은 돈과 함께 고급 직물의 가치를 인정하였다. 진귀한 직물의 거래를 통하여 미술품의 도상이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중해 서부 지역은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과 수 세기 동안 지속적인 교역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인도의 무굴 제국은 매우 흥미로운 사례이다. 무굴 제국의 미술에는 선교를 위해 인쇄한 성화나 「식물지(植物誌)」 사본 등을 통해 군주와 왕자 등 고위 관리와 저명인사를 위한 초상화 기법, 유럽에서 기원한 동물 묘사 기법 등 서구적인 요소가 깊이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측면에서 무굴 제국의 세밀화는 이슬람 예술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정교한 것으로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아시아 전역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이슬람 세계가 식민 통치하에 놓이게 되면서 변화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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